심리적 성장의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다. 다브로프스키(Kazimierz Dąbrowski)는 인간의 발달이 단순히 연령이나 경험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격변과 고통, 혼란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과해 내는가에 따라, 사람들 간에 발달의 깊이와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은 심리적으로 격렬한 시기를 겪은 뒤에도 큰 변화 없이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정서의 요동을 외부 탓으로 돌리거나, 가능한 한 빨리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려 한다. 감정의 파고를 ‘견뎌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에 어떤 의미 있는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브로프스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이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단순히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는 태도를 취한다. 힘겨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를 곱씹으며, 깊은 호기심과 학습의 의지를 지닌 채 내면을 응시한다. 그에게 있어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단순히 고통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고통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심리적 자율성과 통합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였다.
다브로프스키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 즉 불안, 우울, 죄책감, 자기혐오, 공허감 등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끌어안을 수 있는 능력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감정들이 인간을 해치는 독성물질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변화의 불씨이자 ‘심리적 발달의 연료’라고 표현했다. 이는 다소 역설적이지만, 다브로프스키는 ‘내면의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기존의 자기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촉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깊은 자기 성찰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즉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고등 수준의 발달 가능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이런 사람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을 방어하거나 타인을 탓하는 대신, 차분히 자기 자신과 현실을 재정립하려 한다. 그들은 자아의 모순과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때때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기 탐색은 늘 불확실성을 동반하며, 때로는 과거의 실수와 상처를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자기반성은 종종 불안을 일으키고, 죄책감이나 우울한 감정까지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다브로프스키는 바로 이 불편한 감정의 틈에서 인간이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자기 회의와 고통이 단순히 무너짐의 신호가 아니라, 더 높은 자율성과 창조성을 향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 사상가들이 삶의 고통 속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발견하거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했다. 그들은 내면의 갈등을 통해 더 넓은 관점, 더 깊은 공감,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획득했다.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은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과는 상반되는 길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기 내면의 갈등을 피해 가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끈질긴 태도. 바로 그것이 인간을 보다 복합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발달시키는 핵심 동력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를 ‘긍정적인 탈통합’이라 불렀다. 기존의 자아가 해체되는 고통을 겪은 후,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자아가 재구성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브로프스키가 말한 ‘긍정적 탈통합’은 정신적 붕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자아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내면에서의 갈등과 고통이 단지 견뎌야 할 불행이 아니라, 성숙한 존재로 변화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보았다. 이 관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이자 통찰이 된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기존의 자아 체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믿어왔던 신념이나 가치가 더 이상 납득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다브로프스키는 이런 시기를 단순한 혼란이나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인격 발달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가령, 삶에서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실패 끝에 누군가는 비로소 자신이 '사랑받아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신념이 자신을 지속해서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처럼 자기 내면을 다시 조각하는 경험은 때로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그 혼란의 시기를 용기 있게 통과한 사람은 훨씬 더 유연하고 깊이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회의'다. 우리는 자기 확신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을 수반한다. 자기 회의란, 지금의 나는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겸허한 자세이며, 새로운 나를 재정비하기 위한 지적 모험이다. 물론 회의는 고통스럽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건 자존감의 균열을 견디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각의 경직에서 벗어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불확실성 또한 성장의 중요한 요소다. 어떤 해답도 쉽게 주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비로소 깊이 고민하고 탐색하게 된다. 예술가들이 창작의 갈림길에서 극심한 내적 혼란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반복하지 않고,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과 상상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태어난 질문들은 점차 자아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결국 다브로프스키가 강조한 것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진짜 기회는 고통과 혼란, 불확실성이라는 불편한 감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 불편함에 반응하는 태도가 '회피'가 아니라 '성찰'이라면, 그 사람은 더 높은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성장하는 자는 고통을 피해 가지 않고, 고통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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