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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니체 허무주의

by 청파란 2025. 4. 26.

 

1. 허무주의란?

‘허무’는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해도 헛되게 느껴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인식은 인간에게 깊은 무력감과 고독을 남긴다. 이러한 감정이 철학적 사상으로 체계화된 것이 바로 '허무주의(Nihilism)'다.


허무주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에 의해 다루어졌지만,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철학의 중심으로 끌어낸 인물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다. 니체는 기존의 가치 체계, 특히 종교와 도덕이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믿음과 절대적 진리를 점차 잃어가면서,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나 가치를 갖지 않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니체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요약했다. 이 말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간이 삶의 의미를 의지해 온 종교적·도덕적 체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니체가 지적한 허무주의는 단순한 절망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 허무를 직시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가능성을 보았다. 허무의 시대는 혼란과 공허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초월’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을 ‘초인(Übermensch)’이라 불렀다. 초인은 기존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다.

허무주의의 개념은 문학, 예술,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되어 왔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표현하며, 니체와 유사하게 허무를 극복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는 신의 벌을 받아 끝없이 바위를 산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바위는 매번 굴러 떨어지고,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반복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인생을 상징하지만, 카뮈는 이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저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허무 속에서도 인간은 의지를 갖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현대사회에서 허무주의가 갖는 의미

현대 사회에서 허무주의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허무주의란 전통적 가치나 삶의 의미를 부정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세계관을 뜻한다. 원래 허무주의는 19세기 후반 니체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명되었으나, 21세기의 사람들은 과거와는 또 다른 이유로 허무주의에 끌리고 있다.

우선, 현대 사회는 이전 시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대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가치관, 사고방식, 삶의 방식에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삶이 진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점점 모호해진다.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세상은 개인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모든 것은 무의미하지 않은가'라는 허무주의적 사고로 빠져들게 된다.

또한 현대인은 극심한 경쟁과 성과 중심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비교 속에서 우열을 가르는 시스템은 개인에게 깊은 피로감을 남긴다. 열심히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거나, 삶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이때 허무주의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어차피 모두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하면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역시 허무주의를 부추긴 주요한 사건이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멈춰 세우고, 개인의 통제 너머에 있는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열심히 살아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불러왔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미래 계획, 성공, 인간관계, 심지어 생명까지도 불확실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허무감과 공허감을 경험했다.

또한 현대는 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정신적 만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끊임없이 소비하고 자극을 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남는다. 광고와 미디어는 더 빠르게, 더 많이 가지라고 부추기지만, 그런 것들이 진정한 행복이나 만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점점 깨닫고 있다. 이에 따라 ‘도대체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깊어진다.

허무주의는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사고방식만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허무주의를 통해 기존 가치관에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려고 시도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해도, 그렇기에 오히려 자기가 선택하는 의미가 더욱 소중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니체가 말했던 ‘초인(超人)’의 정신처럼, 허무를 딛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움직임도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결국 오늘날 허무주의가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 그러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현실. 이 간극 속에서 허무주의는 절망이자,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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