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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크라테스 문답법과 현대 사회

by 청파란 2025. 4. 27.

 

서양 철학의 뿌리를 세운 인물로 흔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꼽는다. 이 세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어가며 인류 사상의 초석을 다졌고, 그 영향력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중 소크라테스는 가장 먼저 등장하여 철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당시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소크라테스의 이름은 그의 친구 카레이폰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으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레이폰은 신탁을 통해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의 계시를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스스로 무지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소크라테스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치가, 시인, 장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이 진정한 지혜를 가졌는지 탐구했다.

그 결과,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지식이 풍부하고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이를테면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험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 채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이 그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태도, 즉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이어졌다. 그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게 했고, 이를 통해 진정한 지혜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는 상대방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모순을 드러내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이 사실은 허술하거나 근거 없는 것임을 폭로했다. 이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과 모욕감을 안겼다.

특히 젊은이들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흉내 내며 기존 권위에 도전했다. 어른들이나 권력자들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무지를 지적하는 행위는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커다란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젊은 세대를 타락시켰다는 죄목과 아테네의 신들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재판은 소크라테스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변명하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고수하며, 무지의 자각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그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며, 자기 삶이야말로 검토되고 반성하는 삶이었다는 점을 주장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 수감된 뒤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제자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갔다. 제자 플라톤과 크리톤 등은 그에게 탈옥을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악법이라 하더라도 법은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자신이 탈옥한다면, 아테네의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평생 추구해 온 '정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독배를 받아들여 생을 마감했다. 독이 온몸에 퍼지는 동안에도 그는 담담하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인간의 영혼과 사후 세계에 대해 깊은 믿음을 드러냈다. 그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플라톤은 스승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등 여러 저술을 남겼다. 플라톤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체계화되고 후대에 전해졌으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글보다는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중시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대부분 플라톤이나 크세노폰 같은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무지를 아는 것'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철학적 메시지로 남아 있다. 진정한 지혜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는 소크라테스의 교훈은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고대 아테네는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를 자랑했지만, 실상은 대중 선동과 권위에 의존하는 정치 문화가 만연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의 신념을 흔들었다. 그의 문답법은 단순한 지식 교류가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 스스로 무지를 자각하게 했고, 이는 권력자들의 불편함과 대중의 반감을 샀다. 결국 그는 법정에 서게 되었고, 죽음을 맞이했다.

2,500년이 흐른 현대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권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일이다. 대기업의 부당 행위,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언론의 편향성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종 사회적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몸소 보여주었듯이, 질문은 사회를 점검하고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다.

특히 현대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전문가, 데이터, 통계가 넘쳐나지만,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려면 여전히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무지의 자각은 정보 과잉 시대에도 유효하다. 표면적인 지식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의심하는 힘이야말로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덕목이다.

오늘날 젠더 불평등, 기후 위기, 인권 침해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은 모두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잇고 있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침묵하는 다수에게 변화를 촉구한다. 때로는 고립되고 공격받지만, 역사는 늘 질문하는 자들의 용기를 기억해 왔다.

질문은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질문은 인간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소크라테스처럼 우리 역시 '왜'를 묻는 용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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